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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5-16 00:19

부활 6주 토요일

2,416
김오석 라이문도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을 내주신다. 당신의 이름을 마음대로 쓰도록 허락하신다.

이름을 빌려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보증을 선다는 의미다. 이름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빌려주는 행위는 그 전제로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무슨 뜻인가? 청하는 바에 대하여 온전히 예수님께 의탁하여,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 없이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청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건네주시고자 하는데, 당신 이름으로 보증을 서겠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보증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며 그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건성으로 그냥 한 번 청해 보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구할 때, 예수님께서 구하듯이 그렇게 구해야 한다. 예수님의 뜻과 경륜에 어긋나는 것을 단지 입술로만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애걸한다면 자칫 그분의 이름을 훔쳐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사족으로, 예전에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로 마지막 매듭을 지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의 구원 중재의 의미가 더 강조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로 바뀌었다. 과문하여 그 깊은 연유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 좀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기도는 통하여로 하더라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날이 오면, 다시 말해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 질문할 것이 없는 그날에는 우리가 당신 이름으로 청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심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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