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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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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15 00:09

부활 6주 금요일

2,446
김오석 라이문도

해산할 때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 20)

 

정말 그런가요? 저는 아이를 뱃속에 품는 느낌을 알 수 없는 남자입니다. 해산의 진통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심지어 아이 낳는 여인 근처에 함께 있어본 적도 없답니다. 그저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해산의 진통을 보았고 들었을 뿐이죠.

 

아무튼 예수님도 당신이 겪어야 할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여인이 겪어야 할 해산의 진통에 비유하는 것을 보니 그 고통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때까지의 모든 고통이 다 잊혀질 정도로 충만한 기쁨과 희열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정말이겠지요. 당연히 그러리라 짐작은 됩니다. 한 생명이 하느님의 숨결을 담고 내 모습을 빼닮은 채 나의 부활을 살아 줄 텐데 감격스럽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제자들에게는 경탄과 놀라움, 기쁨과 감사의 절정이었고 그 체험과 깨달음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는 메시아, 그리스도요 주님이라는 복음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겠지요.

 

진통 없이는 분만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일은 고통이라는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누리며 산다면 그것은 그분 고통과 죽음의 은혜요, 그 분이 죽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고통과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대로 삶이 될 때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사시는 것이 되고, 그 분 말씀이 우리에게서 외면당해 그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할 때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됩니다.

 

아이를 낳는 진통과 아이를 낳은 기쁨이 교차하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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