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5-07 00:35

부활 5주 수요일(뿔나팔 미사)

1,157
김오석 라이문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평범하고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나무는 뿌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와 이파리로 구분하여 말할 수 있는 일체다. 드러난 외적 모습을 사람들이 편의적으로 구분하여 지칭하는 것일 뿐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통합된 하나다.

인간의 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몸에 붙어 있지 않은 팔과 다리를 상상할 수 없다. 머리카락 한 올, 손톱하나도 몸에 붙어 있을 때라야 영양이 공급되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내 손가락은 내 몸이요, 내 머리카락, 내 손 발톱은 모두 유기적 일체인 내 몸이다.

 

예수님은 당신과 제자들, 곧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너무도 단순하고 명쾌한 정의를 내리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다. 당신과 우리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하나라는 것이다. 유기적 일체라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를 생각해 보라. 태아는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과 생명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태아와 같다. 엄마가 먹는 음식은 피와 살이 되고, 엄마의 피가 태아를 관통하면서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자라게 한다. 유기적 일체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다.

 

영성적인 측면에서 예수님 안에 머무름이라는 주제는 오늘 복음의 핵심 단어이다.

 

예수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예수님과의 사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분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분 마음 안에 들어가 확인하고 나의 뼛속 깊은 곳에 아로새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 역시 그분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분과 내가 마치 엄마와 태아가 탯줄이라고 하는 생명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 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 분이 살고 있음을 확신하는 과정이 예수님 안에 머무름이라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기 넘치는 사람으로 변모되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의 시선과 마음을 얻게 된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한없는 연민의 시선으로 다가서시고 따스하게 어루만지시던 예수님을 닮게 된다. 바리사이의 위선과 허위를 질타하시고, 지배자들의 억압과 착취, 불의와 부정을 가죽 채찍으로 쓸어버리시던 거룩한 분노를 배우게 된다. 하느님 나라를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 이루는데 자신의 구체적 재능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열매다. 열매란 어떤 일의 결과로 손에 쥐는 그 어떤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열매는 진행형의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기꺼이 내 놓을 때 이미 그는 하느님 나라에 있다.

 

머무름과 열매가 결코 먼저와 나중이라는 시간적 순서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쓰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현실은 너무 암울하고 답답하고 기력은 소진되어 의욕과 희망의 불씨마저 꺼질 듯 깜박거린다면 돌아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예수님께 파이프라인을 연결시키고 있는가? 그분으로부터 생명의 수액을 공급받으며 그 분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 예수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사는 사람의 기도는 이렇다.

 

숱한 파도와 험한 풍랑이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삼켜버릴까 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성낸다 해도 그것은 바위를 쪼갤 수 없습니다. 파도가 산처럼 높다 해도 예수님의 배를 삼켜버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죽음입니까?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혹 유배 생활입니까?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혹 재산의 손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두려운 것들이 멸시할 만한 것들이고 그 좋은 것들도 웃어 넘길만한 것들입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나의 뜻이 아니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제가 여기 있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그저 감사드릴 뿐이옵니다. 당신께서 아무 곳이라도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해주신다면 그 또한 감사드릴 뿐이옵니다. 아멘.

 

하느님 나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을 위해 애쓰다 혹 지치고 힘들어 하는 분을 위한 이야기 하나 사족으로 덧붙인다. (한겨레신문, 김 선우의 빨강. <불을 끄는 벌새>, 201555일 자)

 

숲이 불타고 있었다. 숲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 앞 다투어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데 작은 벌새 한 마리는 입에 물을 한 모금씩 물어다 불을 끄느라 왔다 갔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도망가던 동물들이 벌새를 보고는 빈정거렸다. “저런다고 별 수 있겠어? 이 숲은 이제 끝장났어!”

그러나 작은 벌새는 부리에 물을 머금은 채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이렇게 마음으로 외쳤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