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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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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01 01:39

부활 4주 금요일

2,876
김오석 라이문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눈을 떠 보니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다. 보이는 것 모두 낯설다. 더군다나 외딴 곳이다. 가야할 곳은 정해졌는데 길을 모른다. 길이 없는 산 속이거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다. 그 걱정과 근심을 상상해 보라. 꿈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싫다. 악몽이다.

 

초보 운전 시절 아직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자동차 운전하다 길을 잃은 적이 꽤 자주 있었다. 길 찾는 데는 별 재주가 없는 길치 수준이라서 그런 일이 많았다. 그러나 미사를 하러 가거나 강의를 하러 가는 중이어서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하는 경우 외엔 그리 걱정스럽진 않았다. 왜냐하면 길 따라 차 몰고 가다보면 안내판이 나오고 조심스럽게 그 안내판을 따라 가다보면 결국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그 출발점도 길 위이고 도착점도 길 위지만 길은 끊기지 않고 계속된다. 출발점은 도착점과 연결되어 있다. 서울 가는 출발점이나 서울 가는 길 자체는 서울은 아니지만 계속 가다보면 서울에 다다른다. 이것이 진리다. 길 위에 있는 자는 이미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닿아 있고, 역시 또 출발점에도 닿아 있다. 출발점이 목적지는 아니지만 길은 바로 이 출발점과 목적지를 연결해준다. 길 위에 있음은 결국 고난과 시련의 여정일지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걱정할 것은 내가 길을 벗어나 가시덤불 얽힌 곳에 있으면서, 늪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 그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다.

 

길은 도()이다. 는 진리이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길이라 하셨다. 그 분 안에 있을 때, 진리를 따라 걸을 때 우리는 이미 그 분께서 마련한 아버지의 집에 이미 이르렀음을 알아채게 된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신 그 분과 합일에 이른다. 예수님의 도포 자락이라도 붙들고 야곱의 씨름 흉내라도 내야 하겠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길을 간다는 것은 결국 길 아닌 데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길이신 예수님 외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음을 의미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길 위인가, 아니면 길을 벗어난 늪인가? 갈 곳은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가야 할 곳도 정하지 못한 떠돌이 신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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