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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4-22 00:12

부활 3주 수요일

2,275
김오석 라이문도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요한 6,38)

 

그리스도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죽음으로 초대 교회공동체는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사도 8,1)

박해의 칼날을 피해 공동체가 나뉘고 찢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박해의 칼날이 신자들을 흩어버림으로써 공동체가 와해되었지만 복음이 사방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뜻이 온 세상에 펼쳐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역설이 성립된다. 하느님의 뜻은 그렇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비참의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 질긴 한 송이 야생화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예수님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이 세상에 파견된 분임을 분명히 한다. “내가 생명의 빵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요한 6,35)이지만 실상 그 모든 일이 바로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철저한 능동이면서 완벽한 수동의 삶을 사시는 당신의 소명을 잘 보여주신다.

 

자기 인생을 철저히 자기 뜻대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 즉 철저한 능동의 삶만을 구가하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세상에 내던져진 피투(被投)된 존재로서 인생은 철저히 수동으로 시작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끝없이 갈구하고 자신의 선택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는다. 사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다른 사람의 관심과 평가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자의 미움을 받을 용기가 꼭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합치되는 철저한 수동의 고민과 사려가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믿는 이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하느님의 뜻은 나의 편안함과 안락, 부귀와 세상의 권력을 얻는 방향과는 정 반대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 하나만 맘속에 간직해도 큰 방향 착오는 예방할 수 있다. 오히려 시련과 고통, 불안과 위험, 오해와 곤경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한 선택이야 말로 하느님의 뜻에 맞갖을 경우가 많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스테파노의 순교와 초대 교회 공동체의 해체를 통한 흩어짐을 통해서 당신의 복음이 곳곳에 전파되는 놀라운 일을 해내신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의 영광과 비참, 기쁨과 슬픔, 평화와 불안 모든 분야에서 늘 능동과 수동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당신 자녀들의 선택에 의해 복음과 사랑은 늘 살아 숨쉬며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뜻이 관철되는 철저한 자유의 능동이 늘 하느님의 뜻에 합치되는 온전한 수동이기를 소망하며 매 순간 나의 선택이 이뤄지길 기도했으면 좋겠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하늘에서 온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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