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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4-20 04:06

부활 3주 월요일

2,355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닌다. 무엇 때문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먼저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분이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람들의 손을 잡으셨고 나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질은 보지 못하고 드러난 결과에만 치중하였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그 표징에 담겨있는 나눔과 내어줌의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자신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만 매달렸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육안으로 보이는 현상 뒤에, 그 안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기를 바랐고, 사람들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의 몸은 썩는 몸과 썩지 않는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흙 더하기 하느님의 숨이 우리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르긴 다르되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하나이면서 또 이 둘은 다르다.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지만 별개의 것은 아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는 말씀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리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고 사람의 몸을 취하시어 세상에 오신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을 잡아 말()을 얻으라는 말씀이다. 이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언제 어디서나 먼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곧 영원히 사는 양식이다. 그 영생하는 양식을 먹으면 썩는 몸에 필요한 양식은 저절로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썩는 양식도 썩지 않는 양식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하여 애쓰지 말라고 하신 것은 썩을 양식을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썩을 양식, 즉 육신의 빵을 얻는 방도를 제대로 찾으라는 명령인 것이다.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를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세상적인 여러 가지 것들로 가득 채우는 것은 나에게서 하느님을 비우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을 비우는 것은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나를 채우려고 애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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