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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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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4-16 01:44

부활 2주 목요일

2,293
김오석 라이문도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6)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란 흔히 생각하듯 언젠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을 말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5,13)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영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여기서 영생이란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믿는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 사랑의 관계다. ‘안다란 단어가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영생이 먼 훗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과 느낌으로 상대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와 온전히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생이란 예수님과 우리가 갈림이 없이 일치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54)

 

오늘 416일은 세월호 참사 1년이 되는 날이다. 유가족들은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기억이 소중한 삶의 방식이듯 망각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만 무엇을 얼마만큼 외면하고 망각 속으로 밀어낼지 선택하는 일은 인간 삶의 품격을 드러낸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하는 일이야 말로 삶의 핵심을 간직하느냐 아니냐의 척도가 된다.

꽃다운 아이들의 두려움과 발버둥의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르면 부르르 몸이 떨리고 잠을 이룰 수 없다. 바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않는 커다란 배를 TV 화면을 통해 생중계로 보면서 넋을 잃고, 발을 동동 구르며, 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는지, 그리 자랑하던 과학과 기술은 대체 무엇하는가? 하며 통탄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가슴 아파 한다. 어떤 이는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상적인 정치라면, 상식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면 이렇게 1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 권력은 도대체 뭐가 그리 감출 것이 많아 진실을 밝히는 일에 딴지만 거는 것일까? 세월호를 지워버리려고 안달하는 대한민국의 권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잊지 말아야 한다!

더 안전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거짓투성이인 권력의 해체를 통한 정의의 자리매김을 위해...

세월호 1, 이제부터 기억은 필사적으로 다시 시작되어야 하고 그 기억을 통해 그 날 숨져간 아이들이 부활의 꽃으로 피어날 때 까지,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와 함께 영원을 노래할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의 모든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이 우리와 함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충만한 주님의 자비를 기도하고 청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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