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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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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4-14 23:31

부활 2주 수요일

2,279
김오석 라이문도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 3,20-21)

 

빛과 어둠의 경계선은 결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여기 빛이 있고 저기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빛은 어둠을 향하여 있고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어둠이다. 백퍼센트 진공이 불가능하듯이 순전한 어둠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빛으로 충만하고 빛은 언제나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빛이 곧 어둠은 아니다. 빛은 빛이요 어둠은 어둠이다. 빛과 어둠은 둘도 아니면서 하나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빛이요 무엇이 어둠인가? 하늘을 향하는 것이 빛이요, 자기를 보는 것이 어둠이다. 하나 됨을 보는 것이 빛이요, 분열을 보는 것이 어둠이다. 빛이냐 어둠이냐를 가르는 것은 방향이다.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가로등을 향하여 밤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앞에 있는 동안 길은 환하다. 뒤돌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뒤에는 그림자(어둠)가 따르고 있다. 가로등에서 멀수록 그림자는 크고 가까울수록 작아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로등 빛이 정수리에 쏟아질 때 길은 가장 밝고, 그림자는 몸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어둠은 없다. 북극점에 서면 모든 방향이 남쪽이듯이 빛을 정수리에 받아 자신의 그림자를 삼켜버리면, 문득 사방이 밝음뿐이다.

이제 가로등을 등지고 걷는다. 빛을 등지는 순간 앞에는 그림자가 생기고 빛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림자(어둠)는 커진다. 다음 가로등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림자는 자꾸자꾸 커지고 마침내 몸까지 어둠이 삼켜버리고 만다.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그 빛으로부터 아무리 먼 거리에 있다 해도 이미 빛 속에 있는 자요, 빛을 등진 자는 그 빛으로부터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다 해도 이미 어둠에 속한 자다. 그런즉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그의 `방향이다. 우주는 빛과 어둠의 공존이지만, 그러나 둘의 혼합은 결코 아니다. 우주는 빛이거나 아니면 어둠일 뿐, 두루뭉수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어스름 회색지대는 없다. 우주가 나에게 빛이냐 어둠이냐를 결정짓는 문제는 내가 선택한 방향이다.

 

나는 지금 빛을 향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빛을 등지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느님의 이 세상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계시의 절정이다. 그분은 결코 심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어 구원받게 하려고 오셨다.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 결코 심판자는 아니지만, 빛이신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이미 세상을 심판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빛은 사물과 만나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를 만드는 것은 빛인가 사물인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은 예수인가? 세상인가?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다. 끊임없이 빛을 등지고 살아간다면 말이다. 빛을 향하여 사는 날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이미 그 사람 안에 있으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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