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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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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4-13 03:37

부활 2주 월요일

2,278
김오석 라이문도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5)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성서 원문에서는 태어나다는 동사가 수동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시 태어나는 일은 철저히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말해준다. 거듭남의 여부가 인간의 공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 기도를 했느냐, 선행을 했느냐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분 사랑에 감사드리고 찬양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응답을 드리는 것이지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무조건적인 선물이다.

자칫 선행과 철저한 계명 준수와 열심한 신앙생활로 교만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 하느님이 주시는 무상의 은총을 인간적 행위의 결과로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자신처럼 열심히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쉽게 단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기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철저히 의존하는 창녀와 세리들이 바리사이들 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포한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다.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온전히 의존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는 죄인임을 부정하는 교만이 가장 큰 죄가 되는 이유이다.

자신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이고, 제 힘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겸손이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내 자신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 은총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고,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바다에 잠기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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