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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4-13 03:34

부활 2주일

2,264
김오석 라이문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추종자들, 특히 11제자들의 참담한 심정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체포되던 예수님을 등지고 도망쳤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이 재판받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타의 언덕을 오르던 그 시간에 제자들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군중들 틈에 끼어 구경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장사지낸 사람들은 11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스승과 함께 죽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던 제자들은 모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예수님의 힘없는 죽음에 좌절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군인들을 앞세운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체포하러 올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 비겁한 행동으로 신의를 저버린 사람의 특징은 대체로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고 자신 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거기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폐쇄성입니다. 죄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 바라보게 하는 용기를 빼앗아 갑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서두는 바로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런 상황 한가운데 홀연히 나타나십니다.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놓여있는 제자들의 한복판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제자들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들에게 평화의 선물을 주시며 당신의 숨결로 성령을 불어 넣으시는 것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성령은 약동하는 힘입니다. 활력이 넘치는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성령은 불안과 두려움, 죄의식에 빠져 헤매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는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성령은 믿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그리고 남을 용서해주는 원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새롭게 부르십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빚고 거기에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음 같이, 죄의식과 불안, 두려움에 빠져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그 어둠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제자들을 일깨워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잔뜩 움츠려 들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는 환호작약합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토마 사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다른 제자들의 흥분된 말에 토마사도는 발끈합니다. ‘아 무정한 주님, 왜 하필 그 때, 내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나타나셔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이 당신을 보았다고 해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보고 당신의 뻥 뚫린 옆구리에 손을 집어넣어 보지 않고서는 저 정신없는 다른 친구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토마 사도의 이런 태도는 사실 빈 무덤만이 부활의 증거로 남아있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갈등이었습니다.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얼마나 당연하고 명확한 자기선언입니까? 우리 역시 똑같은 심정이 아닙니까? ‘주님.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십시오. 그래서 저로 하여금 확실히 믿게 해주십시오.’ 토마는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것, 그리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이어야 동의하는 현대인의 물질적 사고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등하는 토마 사도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말씀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이 말씀은 토마사도에게 한 말씀이라기보다는 당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하지 못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시는 당신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물질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며 믿음이 얕고 너무 쉽게 흔들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과연 이 말씀대로 주님의 부활 발현을 체험한 다른 이들의 증언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이 실종된 현대 세계에서, 예수님을 뵙고 그 신비에 압도되어 외치는 토마사도의 신앙고백은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거양성체 때 행하여지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바로 토마사도의 기쁨에 넘치는 고백이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내 주요, 내 천주로소이다!”라는 신앙고백은 바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외치는 토마 사도의 응답입니다. 한 점의 의심 없이 성체 안에 살아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 넘치는 선물을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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