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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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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4-03 01:57

주님 수난 성금요일

2,425
김오석 라이문도

 목 마르다.”(요한 19,28) 그러나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오늘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피와 땀을 흠뻑 쏟으셨기에 탈진해서 실제로 목이 마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신을 외면하고 죽음으로 내몬 인간들의 사랑 없는 비정함에 목마르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목마름은 바로 우리들 것이기도 하다. 사랑 없는 우리의 삶 역시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목마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목마름은 생명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 아 죽게 한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목마름을 대변하고 있다. 너희들이 세상의 유혹과 마음속에 들어있는 허무한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영원히 목마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나의 죄악이 예수님을 죽게 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해서 십자가를 만들어 나 아닌 타인을 그 십자가에 못 박고 싶어 한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할 때 겉옷을 벗어 길바닥에 깔며 열광하고 환호하던 그 함성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는 군중들의 핏발서린 외침만이 남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이다. 예수님의 구원을 환호하고 기대하면서, 정작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못 박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이사야 52,5)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세상의 온갖 죄악의 무게이다. 거기에는 물론 나의 비겁함과 욕심과 이기심과 죄악의 무게가 실려 있다.

책임지지 않는 나의 행위가 행해질 때 마다, 우리는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치고 그분의 손에 못을 박는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오늘 여기서 매일 계속 반복하여 일어나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구원은 이천 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의 덕택으로 우리가 팔짱끼고 앉아있어도 이삭 줍듯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골고타의 언덕을 피땀 흘리며 걸어 올라갈 때 구원은 주어진다. 십자가를 짊어지고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피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할 것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 부활은 없다. 나를 내어놓는 사랑의 실천 없이 구원의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오늘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사랑을 목말라 하시는 주님의 갈증을 풀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목마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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