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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3-31 00:30

성주간 화요일

2,911
김오석 라이문도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요한 13, 27)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의 배신을 예고하시는 스승의 마음은 착잡함을 넘어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이었으리라! 씨 뿌렸던 봄의 희망도 한 여름 날의 작열하는 태양아래서의 땀방울도 태풍과 홍수의 염려도 다 헛일이 되어버린 망쳐버린 농사 앞에서, 한 숨 짓는 농부의 심정이 바로 그분의 마음이었다.

가장 사랑했던 이로부터 당한 배신의 아픈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 마음을 잘 모른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한 인간이 자신이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며 선택한 인간적 결정의 우매함과 그것의 철회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주는 예수님의 통찰이 아닐까? 사람들의 편견, 고집을 맑은 영혼으로 되돌려 진리를 보게 한다는 것, 인간의 길에서 하느님의 길로 돌아서게 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인간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은 결국 밤의 어두움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발을 헛디뎌 죽음의 골짜기에 빠질 공산이 십중팔구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베드로의 맹세요 장담이다. 베드로의 마음은 결연했을지언정 결과를 다 알고 있는 우리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맹세, 결단은 이리도 허약하다. 굳게 다짐하고도 세 번이나 자신의 말을 부인하고 뱉어버린 베드로가 그 증거다. 깨어있어야 한다. 잠들지 말아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딛고 있는 땅이 꺼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잠들기 쉬운 유혹이다.

중뿔나게 바삐 뛰어 다녔건만 농사 망치기 쉽다는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하느님의 마음을 감지하고 그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하고 그리고 나서 움직이라. 땅을 박차고 뛰어라. 그러면 실패는 있으되 좌절은 없다. ‘하느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시기에 쓸데없이 고생만 하고,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린 것 같아도’(이사야 49,5) 하느님께서는 분명 그 품삯을 헤아려주시고 열매를 맺어주신다.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이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유다도 베드로도 그 길을 갔다. ... 오늘 내가 가는 길이 혹 그들처럼 배신의 길이 아닌지 삼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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