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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2-02 23:59

연중 4주 수요일

1,836
김오석 라이문도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마르 6,3)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출가한 예수님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어서 혹은 온갖 금은보화로 장식한 황금마차를 타고 수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고향 땅에 금의환향했어도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전직을 들어 비아냥거리고 자신들의 선입견으로 그분을 재단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환호하고 열광하며 그 앞에 무릎 꿇고 조아렸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고 압도된다. 속마음을 보려하지 않고 드러난 외적 요소에 관심을 집중한다.  높은 지위에 올랐는지, 얼마나 대단한 부를 지니고 있는지 계랑화할 수 있는 숫자에 관심 있다. 그리고는 계량화된 숫자를 마치 그의 인격이나 인품인 것으로 착각한다.

     
좋은 차, 넓은 아파트, 명품 악세사리가 그 사람의 인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유명인사도 미성숙한 인간이 수두룩한 반면, 가진 것 없고 배움이 부족해도 지혜와 인품이 출중한 사람도 많다. 사람을 겉으로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열린 관대함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지어내시고 “보시니 좋다!”고 하셨고, 역시 다른 이에게도 당신의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고 “참 좋구나!”(창세기 1장 참조)하셨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혜와 인품은 얼마나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며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을 실천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고향에 돌아온 예수님의 겉모습은 그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출가 전에 목수였던 사람이 이제 랍비 흉내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이 행하는 지혜와 기적이 놀랍기는 하였지만 고향 사람들의 선입관이 결국에는 예수님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고 말았다. 늘 기존의 방식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진보는 없다. 모든 주부가 맛난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재료와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기존 방식만 고집하면 음식 맛의 진보는 없다. 용기 있는 도전과 그로 인한 일시적 비난을 겁내지 않는 주부만이 같은 음식이라도 월등한 맛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

 


오늘 우리 의정부 교구는 네 분의 새 사제와 여덟 분의 부제가 서품되는 경사스런 날이다. 부모님의 시선이나 죽마고우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단점과 부족한 점이 눈에 선할 것이다. 사제품을 받건 부제품을 받건 그들의 코흘리개 시절의 악동 모습이나 찌질한 기억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속단하거나 기존의 선입관에 고착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의 길을 가고 있다. 변화의 완성이 완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내적 본질을 변하도록 이끌어 줄 것임을 믿고 의탁하면서, 그들이 완덕의 길로 나아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교회공동체에 봉사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가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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