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 화요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핵심은 용서의 횟수가 아니다. 성서에서 7은 완전함을 의미한다. 완전함에 완전함을 보탠다는 것(77번)은 용서는 한계나 횟수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용서가 한량없기에...
용서한다는 것은 때로 먼저 손을 내밀거나 무릎을 꿇는 무조건의 수용을 동반하기에 굴욕적인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인간의 위대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한량없는 용서를 받고 있음을 절절히 느끼는 사람만이 참되게 용서할 수 있다.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대부분은 남의 탓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에서 시작된다. 용서는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결국 죽여야 하는 처절한 아픔으로 다가오기 쉽다. 용서는 희생이고 십자가이고 사랑이다. 예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참사랑은 용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한다 해도 가슴에 미워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그는 아직 완전한 사랑에서 멀다.
누가 당신을 괴롭히고 해꼬지 하나요? 누군가가 못 견디게 싫고 미운가요? 냄새나는 쓰레기, 썩어가는 오물을 가슴에 담고 살지 마세요. 버리지 않으면 그 독소가 나의 육신을 썩게 하고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주님,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그에 대한 미움의 찌꺼기를 없애주시고, 그가 당신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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