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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28 21:54

연중 3주 금요일

2,317
김오석 라이문도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또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4,26-28; 31-32)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조용히 저절로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오늘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치신다. 또 그 하느님 나라는 매우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하느님 나라는 농부의 노심초사와는 상관없이 심겨진 씨앗이 지닌 자체적 생명력과 자연과의 조화로 저절로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실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다고 생각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노력과 정성일지라도 헌신과 투신, 희생이 전제될 때 하느님 나라는 성장하고 완성되는 실재라는 가르침이다.

 


인도 캘커타에서 테레사수녀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끌어안고 연민의 눈길과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고 보살피기 시작했을 때, 어느 골목의 땅에 금을 그어 학교를 짓고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오늘 세계를 묶는 사랑의 고리로 자라날 것을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 기다리고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는 일순간에 천지개벽하는 굉음과 거창한 소용돌이 후에 나타나는 도깨비 방망이의 조화 같은 것이 아니다. 선의의 사람들이 좋은 지향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모이는 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여주는 작은 친절과 봉사, 좌절과 슬픔 가운데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이의 손을 잡아주는 연민과 공감에서 하느님나라는 출발한다.

 


은연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 천국은 세상 종말 이후 혹은 죽음 이후에 갈 수 있는 어떤 곳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런 관점을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하느님나라는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라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신앙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살지 못한다면 무상의 선물로 주어질 궁극적인 하느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사랑과 나눔으로 서로 손잡고 봉사와 희생의 옷으로 갈아입고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 그리고 차별 없는 공정함과 더불어 함께 사는 기쁨,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이루어야 할 이유이다. 지금 당장의 눈으로 보아 완성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해도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위한 우리의 겨자씨만한 작은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끝을 보리라는 희망으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하느님나라를 위한 나의 끝없는 작은 노력과 헌신 없이 선물로 주어질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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