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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25 00:39

연중 3주 월(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1,705
김오석 라이문도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사도 22,6-8)

  

<사울의 길 바꾸기>

  

대제관의 뜰 한가운데

맡겨만 주시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뿌리 뽑겠나이다

목청을 높여 외치던 사내가 있다.

    

야훼의 이름으로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포획할 만만의 준비는 끝났다.

불타는 열정을 추스르며 모래바람 일렁이는 광야의 석양을 바라볼 때 스치는 상념,

나자렛 예수는 누구인가?’ ‘따르는 이들이 더 늘어나는 이유는?’

옅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의문을 힘찬 고개 짓으로 떨쳐 버린다.

그러나 고개 짓 너머 스쳐가는 한자락 우수(憂愁)를 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다시 출발이다.

그러나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복판에서 큰 빛이 얼굴을 때린다.

고막이 터질 듯한 파열음이 골수를 가르더니 땅바닥에 철썩 엎어진다.

땅바닥에 고개를 묻는 순간, 속에서 이물질이 요동치며 입가로 거슬러 나온다.

누구요!’

나는 바로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한줄기 빛나는 광채가 온몸을 휘감는다.

 


땀과 눈물과 모래 바람이 뒤엉켜 눈을 뜰 수가 없다.

바닥에 엎드린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흐느낌의 떨림만이 어둠을 어루만진다.

촉망받던 유대의 한 젊은이, 전도양양하던 사내 사울이 무너져 내린다.

텅 빈 허탈과 충만한 희열이 숨 쉴 틈 없이 뒤섞인다.

통곡인가 했더니 진한 신음소리가 허공에 흐르고 곧 이어 환희의 탄성이 솟구친다. 적막한 광야에 엎어져 몸서리치는 한 사내가 있다.

    

말문이 닫히고 눈꺼풀이 붙어버린 그의 고개가 들릴 줄 모른다.

캄캄한 어둠 속 다마스커스로의 길이 뒤바뀐 그의 삶을 예고하는 듯

울퉁울퉁, 구불구불하다.

삼일 낮 삼일 밤을 울다가 웃다가 잠들었다가 춤추더니,

눈자위에 씌워진 비늘 같은 이물질이 낙엽 떨어지듯 바람에 춤출 때,

삼일 만에 부활했다는 그리스도가 그의 눈망울 안에 잠겨있다.

뚝뚝 떨어지는 환희의 눈물방울이 긴 강이 되어 흐른다.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른다.

    

*돌아섬은 오히려 극단에 치우쳐 있을 때 더 극적으로 발생한다. 하느님과 가장 멀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느닷없이 그분은 내 앞에 계신다. 끝이 시작점이다. 고개를 돌려보라. 가던 길을 돌이켜 보라. 거기가 새 출발선이다.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슬플 때, 가장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끝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시작점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희망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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