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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1-20 11:47

연중 2주 목(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1,803
김오석 라이문도



갈릴래아와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마르 3,7-8)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린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다.”

     

무엇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을까? 맹수가 남겨둔 죽은 짐승의 남은 고기 덩어리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하이에나와 까마귀 떼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한다. 이어지는 복음의 말씀이 부연하듯 그 이유는 그분의 놀라운 병 고침의 능력 때문이었기에 그렇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누구나 다 크고 작은 질병과 통증을 달고 다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질병의 치유와 건강한 몸에 대한 갈망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 소망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질병과 통증은 자연스런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당신의 자녀들을 못 본 체 하시는 무정한 분이 아니시다. 욕망과 죄로 일그러진 영혼으로부터 파생된 육신의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당신 자녀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눈여겨보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다. 눈물로 당신께 돌아서는 모든 이들을 품어 안아주시고 치유해 주신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예수님께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곧 오늘의 우리들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그분을 만짐으로써 병의 치유를 이룰 수 있고, 소망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손을 내밀어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져야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믿음으로 만져야 한다.

     

그러나 한편, 더 숙고해봐야 할 것이 있다.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의 흐름 안에서 한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고통과 병과 죽음은 자연스런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나에게만 특별히 재수 없이 다가오는 삶의 벌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인간에게 발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의 자세는 자연을 거스르는 놀라운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며 노심초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발생하는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라 하겠다. 받아들임이 기적을 바라는 마음보다 깊은 믿음인 이유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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