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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22 23:46

연중 29주 금요일

1,982
김오석 라이문도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가 12,56)

 

예수님께서 무척이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나 보다. 자연현상을 보고 그 인과관계의 의미를 쉽게 알아채는 사람들이, 정작 궁극적 삶의 의미 즉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구름이 서쪽에 몰리면 곧 비가 오겠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이 재물을 향한 탐욕을 조심하라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도, 깨어 준비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해도, 세상에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해도 사람들은 우이독경,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삶의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시대의 징표를 감지하는 영성이 필요하다. 몇 가지 단편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의 시대는 소비의 시대다. 구매력 즉 돈이 힘을 발휘하는 맘몬의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맘몬의 종교에 치우쳐 있으면서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유다의 반문을 하며 잘 살아간다. 나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소비의 유혹을 이겨내고 절제와 불편함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령을 떨쳐내고 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은 하느님나라를 사는 사람이다.

 

디지털 문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 글로벌화의 급속한 흐름에서 모든 민족과 국가들의 경계선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핵사용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수 천 번 파괴하고도 남을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핵 발전의 심각성을 절절히 가슴에 새기지 않고 살아가는 자는 하느님나라와 멀다. 완벽한 기술의 확보도 없으면서 수십만 년을 완전 밀봉해야 하는 핵폐기물이 계속 쌓이고 있다. 화장실 없는 집을 상상해보면 보다 쉽게 이해되겠으나 그 치명적 위험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도대체 인간은 지구와 후손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다음은 핵문제와도 연결되는 지구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변화의 문제이다. 과소비와 대량생산의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필연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가 지니는 영적 의미를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교황님만이 알고 계신 파티마의 제 3비밀이 생태계 파괴로 인한 지구와 인류의 멸망은 아닐까하는 추측에 소름이 돋는다. 종말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를 야기한 인간의 탐욕에 기인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안겨준 진실과 정의의 실종도 시대의 화두요 징표이다. 관료들의 무사 안일 대응과 관피아, 해피아로 불리운 부패의 고리, 고삐풀린 신자유주의의 이익 추구, 물질주의와 배금주의가 만들어낸 꽃 같은 아이들과 승객들을 두 눈 뜨고 바다에 수장시켜버린 우리의 허망함이 대한민국 침몰의 전조로 보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해석일까? 그러면서도 아직 진실과 철저한 원인규명은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다들 덤덤하게 자기 앞일 가리며 일상성의 노예가 되어간다. 우리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시대의 징표를 살필 때 기준은 복음이다. 생명을 살리는지 죽이는지, 진리를 추구하는지 거짓을 덧씌우고 방관하는지, 약한 이의 편이 되어주는지 짓밟는지, 사람을 공동체로 모으는지 개인으로 파편화 시키는지의 여부가 그 척도다.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교회가 정치문제에 관여하느냐 볼멘소리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간을 비참으로 내모는 정치세계가 복음의 가치, 정의로운 방식으로 작동되도록 애쓰는 노력 없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느님 말씀과 가르침을 외친 예언자적 전통은 교회의 기본소명이다. 신앙인 각자의 예언자적 선포와 투신이 그래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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