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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25 22:57

연중 21주 수요일

2,177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마태23,27)

 

참으로 모진 말씀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시신과 그것이 묻혀 있는 무덤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무덤을 하얗게 회칠하였다. 이 작업은 무덤의 표시에 불과했지만 오늘 복음은 마치 무덤을 예쁘게 보이려 했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 아래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데 그래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냉혹한 비판이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장(化粧)문화가 떠오른다. 예쁘고 아름다워지려는 욕구가 인간 본능일까? 잘 모르겠다. 단언하건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존재 의미를 싣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욕구가 만들어지고 세뇌된 이차적이고 부가적인 욕구로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 바라보는 절경의 아름다움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의 아름다움을 양손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어느 쪽인가? 취향의 문제인가? 하느님의 생각은?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더 아름다워지려고, 나이 들어 육신의 변화와 상실을 체험한 노년기의 어른들은 더 젊어 보이려고, 못생기고 자신 없는 외모를 지닌 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결점을 가려보려고 화장을 한다. 특별히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충분히 예쁜 얼굴에 너무 이르게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는 이유를 남자인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원래 나는 맨 얼굴을 좋아하긴 했다. 하긴 이젠 남자들도 예뻐야 한다고 소위 메이크업을 해야만 한다고, 남자들을 위한 화장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언론과 광고는 계속 부추기고 있다. 중국인들이 휩쓰는 명동거리가 화장품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한다.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태의 흐름에 저항할 줄 아는 주체적 자아를 성숙시켜야 할 때다.

 

겉모양도 소중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핵심은 속 내용이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내적 아름다움을 위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맨얼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한 감사의 찬양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몸은 하느님의 것이요, 나의 존재는 하느님의 최고 걸작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케이블 TV 프로그램 렛 미인에 출연하는 이들처럼 정말 어쩌지 못하는 혐오스런 외모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맨 얼굴로 세상에 나오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들에게 참된 구원은 과연 무엇일까?

 

대머리인 내가 멋진 가발을 쓰고 나타나면 교우들이 기뻐하며 날 미남으로 봐주고 환호해 줄라나? 엉뚱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맨얼굴이 더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 연민과 자비가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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