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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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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8-21 02:42

연중 20주 금요일(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2,162
김오석 라이문도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은 조건 없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챈 사람들에게서만 흘러나오는 자연스런 감사와 기쁨 충만한 응답이다. 창조란 하느님 사랑의 흘러넘침이고, 그 창조의 절정인 인간으로서 하느님 앞에 서있는 자가 바로 나임을 자각할 때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노래는 저절로 하늘에 울려 퍼진다.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19-20)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웃 사랑에로 그 구체적 실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의 현존재가 하느님 사랑이 흘러넘침의 결과인 것처럼, ‘의 현존재 역시 하느님 사랑의 흘러넘침이고, 그런 너와 나를 바라보며 하느님께서는 참 좋다!”하셨고, 하느님 안에서 너와 나는 이미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은 첫째가는 계명이 하느님 사랑임을 가르치시면서, 두 번째인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인 첫째와 견주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고,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모르거나 희미한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 아니 그런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적 삶과는 다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껴안는 과정이다. 하느님은 조건을 따져가며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결점과 죄까지 남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신다.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엄격할 필요가 있으나 자신을 완벽한 존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 스스로를 관대히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의 그늘과 수치와 죄를 내 일부로 껴안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학교 시절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해 성소를 포기하는 동료를 여럿 보았다. 성인이란 죄와 부족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죄의식과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더욱 열렬히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무릎 꿇는 겸손함의 열매가 아닐까?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다르고 독특하며, 신비로운 우주 안에서 각자 고유한 존재이다. 내 역할이 크건 작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고유한 나의 존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면 그뿐이다. 누구의 눈길도 가닿지 못할 천 길 낭떠러지 한 가운데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을 어찌 하느님께서 부족하다 하겠는가? 그러나 그마저도 유한한 것이어서 꽃피우는 지금 이 순간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기뻐하되 곧 스러져버리고 말 것임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하느님을 잊지 않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한 가지다.

 

하느님 사랑의 흘러넘침의 결실인 나, 그 분 앞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인 나, 끊임없이 용서받는 나, 그러나 나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향기와 빛깔을 가진 그분의 꽃인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나 아닌 이웃을 향해서도 존경과 자비와 친절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영 딴판인 사람일지라도, 이유 없이 나를 짜증나게 하고, 혹은 나를 미워하고 모함하고 저주하고 손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그냥 웃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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