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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20 01:13

연중 20주 목요일

1,986
김오석 라이문도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마태 22,2)

 

오늘 복음의 내용은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밭에 일하러 가고, 장사하러가고, 심지어는 심부름꾼들을 때리고 죽였다는 것이 첫 번째 장면이다.

화가 난 임금은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없애버리고, 이제 아무나 잔치에 초대하니 그제야 비로소 잔칫방이 가득 찼는데, 혼인 예복을 입고 오지 않는 손님 하나를 바깥 어둠 속으로 쫒아내는 장면이 그 다음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의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일진대 왜 사람들은 이 초대에 선뜻 응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삶의 타성과 습관, 자기가 설정한 세속의 목표와 욕망에 너무 깊게 빠져 있어서 영적인 예민함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영적인 진보와 참된 진리,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관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돈이 신앙보다,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의 태도다. 지상적인 것에 몰두한 나머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마음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이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거나, 술타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자신의 삶에 묻혀 임금의 초대를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잔치 집에 사람이 모여들지 않으면 잔치가 열리는 것은 의미 없다. 임금은 이제 동네 어귀, 길거리에 있는 아무나 잔치에 불러 잔칫방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그 잔칫방은 풍성한 음식과 넘치는 술잔, 그리고 일상에서 탈출한 여유로움이 넘치는 곳으로 변했지만, 반면에 급조되어 자리를 차지한 하객들의 불완전함이 뒤섞여 있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와 있으나 아직완성되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전형으로서 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강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 의식 있는 사람들과 의식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밀과 가라지가 뒤섞여 공존하는 공동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지상의 여정을 걸어가며 수많은 단련을 통해 더욱 정화되고 성숙되어야 하는 순례자인 것이다.

 

인간 역시 교회와 마찬가지로 분명하지 않고 늘 모순으로 가득 차있는 존재다. 인간 안에도 늘 선과 악,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자기포기와 이기심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도, 인간 개개인 안에도 모순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오늘 교회 안에서, 교회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에 걸 맞는 예복을 차려 입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잔치에 남아 있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예복을 갖춰 입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이 예복을 육신의 거룩함, 금욕, 사랑으로 설명했고, 개신교는 믿음으로 보았다. 예복은 여기서 선행을 가리킨다. 자기희생과 헌신을 통한 사랑과 나눔을 포괄하는 선행은 지상의 재물로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일이다. 하느님의 초대인 은총과 우리의 선행으로 짜 입은 예복이 구원의 보증이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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