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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19 06:51

연중 20주 수요일

2,047
김오석 라이문도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마태 20, 14-15)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과 아홉 시, 열두 시, 세 시, 다섯 시에 합류한 모든 일꾼들에게도 똑같이 일꾼의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한 처사인가? 오늘날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그럽고 관대한 포도원 주인은 그렇게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아들고 투덜거리며 주인에게 이렇게 항의한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 20,12)

자신들이 일한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듯한 처우에 대해 그리 말했으나, 사실 주인과 애초 계약한 금액은 한 데나리온이었으니 부당한 처사는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오후 세 시나 다섯 시에 와서 일한 사람들 그룹에 끼었다면 덜 힘들게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질시와 원망의 볼멘소리다.

 

노동이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인간의 땀으로 다시 새롭게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지속적인 창조 사업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기본 동력이요 거룩한 행위가 된다. 따라 구체적 노동 현실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때로는 나의 수고와 노동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장애물 내지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어찌 되었건 오늘 복음에서 아침 일찍부터 땀 흘려 일한 일꾼들의 수고와 노력, 그 결과로 나타난 노동의 열매는 하느님 창조 사업을 위해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포도원 주인으로 지칭되는 하느님의 관대하고 속 깊은 마음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 소위 오늘날 실업 상태에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필요를 함께 걱정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은 몇 시간 일했느냐의 노동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모든 것이 숫자로 계량화된 상품 중심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인간의 노동도 어김없이 수량화되고 계량화된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직무 능력이 빈약하고, 명석하지 못한 노동자, 밥그릇만 축내는 듯한 좀 모자란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는 실업자들에 대해서도 외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가족들과 그들의 인간적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관대하고 너그러운 시선을 견지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다만 희망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자본주의 기업 현실에서는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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