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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17 06:58

연중 20주 월요일

2,135
김오석 라이문도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2)

 

신부는 발을 올렸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자기는 지금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신부가 예수님 성화를 밟고 배교하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다. 세바스티안 로드리고 신부가 거적에 돌돌 말려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신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성화를 밟는 장면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왜 소설의 이 장면이 떠올랐을까?

재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십자가도, 예수님의 성화도 능히 밟을 수 있을 것 같은 오늘날 이 시대 물신 숭배에 대한 소름 같은 것이었다. 삶을 지배하는 온갖 소유물과 돈에 대한 집착의 맹목성에 대한 스스로의 아픈 성찰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계명을 다 지켜온 부자 청년에게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단 한가지란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청년에게 슬픔을 안겨주었고 예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릴 것 없이 돈이란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맨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오늘날 사회의 변동성이 강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서, 인간적 삶을 영위할 모든 책임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지 않고 개인에게 전가할 때,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힘을 찾아 의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학력, 지위나 권력, 연줄이나 외모 그리고 돈이 바로 그 힘의 바탕을 구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돈은 가장 견고한 힘으로 군림하고 있다.

 

다른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질 때라도 돈은 변치 않은 가치로 남는다. 지위나 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어떤 인간관계에도 통용되는 힘이고, 외국에서도 효력을 상실하지 않으며, 세월의 흐름에도 끄떡없다. 사람들은 이 무소불위의 절대자를 신봉하는 새로운 종교를 통해 불멸의 환상을 누리고 싶어 한다.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하는 온갖 힘들에 맞서 자기를 지켜내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선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돈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을 돈을 채굴하는 광산으로 밤낮 없이 밀어 넣고 있다.

 

사람들은 돈, 권력, 성공, 인정, 명예, 사랑 등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검증되지 않은 신념 위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들을 얻기도 쉽지 않으며, 또 얻는다 하더라도 결코 당연히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얻으면 매달리고,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잃게 되면 세상을 다 잃은 듯 좌절하고 비참해진다.

 

오늘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 양자택일 하여라. 여기 돈 다발과 성화상이 있다. 어느 것을 밟을 생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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