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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12 22:50

연중 19주 목요일

2,291
김오석 라이문도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왜 사람들 마음 안에 미움이 생길까?

기대한 것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무너질 때 당혹스러움과 배신감 때문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원한이 있다는 말이다.

 

원한은 왜 생길까?

나에게 구체적인 물질적 손해를 입힌 경우.

무시 받았다고 느낄 때(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때).

신체적인 상처와 생명에 위협을 받은 경우에.

하는 짓이 그냥 미워서.

 

이런 경우 우리는 화를 낸다. 열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화는 화를 부른다. 화를 냄으로써 커지는 내 목소리 체면을 살리기 위해 더욱 자신을 고집하고 정당화하고, 상대편의 못된 점을 강하게 고발한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화를 내서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커다란 감정의 앙금이 남는 법이다. 감정의 앙금은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게 하고 점차 상대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고착시키게 된다. 한번 고착된 어떤 사람의 잘못된 인상이 좋아지기는 참 어렵다. 첫 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갖고 있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그 빚을 탕감 받았으면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괴롭혔다는 얘기다. 일억을 탕감 받은 자가 만원 빚을 받으려고 법석을 떤 꼴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면, "저런 몹쓸 놈"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나는 그 몹쓸 놈에 포함되지 않는가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잘못과 비행과 죄에 대해 돌이켜보라.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인내롭게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용서해주셨는가? 그런데 나는 나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그리고 인내롭게 기다려주었는가? 아니다. 점점 더 미움의 싹을 키우는 방향으로만 생각을 고정시켜왔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한사람 쯤 가슴에 품고 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려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그 못난 모습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못난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그의 악한 부분까지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실상 인간으로서 그리하기는 참 어렵다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용서는 삼세번으로 충분하지 않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고 했다. 완전수인 7이 겹치는 숫자란 사실 무한대의 의미다. 용서의 끝은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모두를 사랑하지고 기다려주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걸작품이다. 어떤 조각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조각가의 작품을 무시하고 깨부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한분 하느님뿐이시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신 사랑이시다. 사람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지 말지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터이니. 실망이 없으면 미움도 원한도 그래서 용서라는 어려운 일도 생기지 않을 터이니. 마음을 비우고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갈지어다. 단 한 가지 하느님의 지혜와 인간적 지혜를 총동원해서 잘못한 형제를 타이르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어제 복음 말씀-어떤 형제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타일러 주어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공동체의 힘을 빌려라)

 

나는 얼마나 무시당하며 사는 것을 허락하는가? 나는 어느 정도까지 손해보며 살 수 있는가? 나는 내 생명의 어느 부분까지 조건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며 살 수 있을까? 나는 얼마만큼 다른 사람의 미운 짓을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가? 우리 신앙인의 숙제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할 수 있는 자 되게 도와주소서. 제 스스로는 할 수 없으나 제 안에 계신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면 안 되는 일 없음을 믿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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