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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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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8-10 07:37

연중 19주 월(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225
김오석 라이문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밀알의 비유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 12,23)라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때가 왔음을 선언한 이후 당신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때는 죽음의 때이고 부활의 때이다. 밀알은 예수님 당신 자신을 의미하고, 밀알의 죽음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뜻한다. 밀알 하나가 맺는 많은 열매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한다.

 

죽음이 곧 부활이라는 메시지다. 죽음으로 생명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나무는 뿌리와 가지로 구성되지만 뿌리 따로, 가지 따로는 아니다. 나무는 하나다. 그렇지만 언제나 뿌리가 먼저다. 씨앗을 뿌리면 뿌리가 먼저 생겨나고 다음에 위로 싹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죽음이 곧 부활(생명)이지만, 죽어야 부활하는 것이지 거꾸로는 아니다.

 

사과 한 알은 내일의 과수원이다. 그러나 그 사과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바위 위에 놓여 있다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다.”(칼릴 지브란) 사과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새로운 사과나무를 일궈낼 수 없고 과수원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윤기 나는 딱딱한 밀알 껍질 속에 생명이 들어있다. 그러나 생명이 싹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땅 속에서 껍질을 깨뜨리고 썩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갗이 찢기는 아픔을 감수하고 죽을 때 생명의 뿌리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추수 때가 되어 몇 십 배의 많은 밀알을 열매 맺게 되는 것이다.

밀알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썩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밀알과 같다. 자아를 내세우고 고집을 부려 썩기를 거부하면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그러나 자아를 부인하고 밀알이 된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불멸하는 참 자기를 만나게 되며,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신비는 육신이 죽기 전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에 물든 거짓 자아를 버리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 더 이상 죽음은 없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라는 말씀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오늘 죽을 수 있는가? 나는 과연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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