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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8-01 08:35

8월 성모 신심 미사 (요한 2,1-11)

2,181
김오석 라이문도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술 없는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 술을 드시지 않는 분은 뭔 소리냐 하시겠지만 주당들에게는 그야말로 물 없는 오아시스겠지요.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게 하는 소통과 통교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술은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용기 있는 영웅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짝사랑의 대상에게 술 한 잔의 기운으로 사랑의 고백을 하게하고, 얌전하던 범생이를 사자처럼 포효하게 하며, 주눅 들어 있던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큰 소리를 치게 하지만 뒷날 아침 부하직원과 상사 모두의 기억을 빼내 서로 평화를 누리게 하는 그런 기적을 종종 일으키기도 한다. (김제동의 술 이야기에서) 술은 적당히 하면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포도주가 없구나!” 성모님의 말씀이다. 일상의 삶도 술이 없다면 무척이나 딱딱하고 건조하겠지만, 혼인 잔치에 술이 없다면 잔치는 파장이다. 혼인 잔치의 중심에는 신혼부부와 하객, 그리고 하객 상호간의 소통과 통교 그리고 축복과 기쁨이 자리한다. 포도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매개로 상호 기쁨의 포옹을 나누게 하는 선물이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함은 이 모든 소통과 통교, 축복의 포옹과 흥에 겨운 기쁨이 이제 끝이라는 뜻이 된다. 잔치의 주빈은 하객들에게 큰 결례를 하게 되고, 하객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모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그 상황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쩌면 잔치 집과 긴밀한 친분이 있어서 잔치의 전체 진행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추측이고, 사람들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살피는 성모님의 안테나는 허둥대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장 당신 아들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인간의 결핍과 곤란한 상황을 지체 없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성모님을 묵상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온다.

 

우리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 즉 인간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궁핍을 당신 아들의 손에 맡겼을 때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부족과 결핍의 상황이 충만한 기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성모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신뢰라는 말의 의미를 묵상하게 된다. 당신 아들 예수님의 계획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따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으로서 어디 쯤 와 있는가? 나는 온전히 나의 인생을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탁하며,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기꺼이 그 뜻에 순명하려 노력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한다. 예수님이 내 삶 안에 현존하여 매순간 기꺼이 내 인생의 포도주로 변모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는가?

 

신뢰란 그런 것이다. 어떤 경우, 어떤 처지에서도 성모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나의 결핍과 고통을 알고 계시며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리고 있다는 확신이 내 삶을 지배할 때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릴 때도 좌절하지 않고, 실패의 때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질병과 죽음 앞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늘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처지를 감지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하고 기도하는 따뜻한 그분의 모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만 보아도, 음성만 들어도, 몸짓만 보아도 무엇을 아파하고 고민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감지할 수 있다.

 

관심과 사랑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느님께 청하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결핍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와 관찰이 우선적이다. 그리고 찾아낸 이웃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고 나를 내어주는 헌신과 나눔의 실천에 애쓰자. 성모님의 중재적 기도와 믿음을 따라 나도 기꺼이 이웃을 위한 기도와 봉사에 나설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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