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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28 00:42

연중 17주 화요일

2,221
김오석 라이문도

천사들은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마태 13,41-42)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의 공통점은 행위이다. 심판은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은 과연 우리의 일상적 행동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도록 이끌고 있는가, 정의를 위한 일에 헌신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불구덩이에 던져질 처지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악이나 선으로 이끄는 적극적 태도나 행위를 하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지도 않고 오로지 착하게 주님만을 희망하며 살고 있다.”고 자기변호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적어도 불구덩이는 면하지 않겠느냐며 자위할 수 있다. 전형적인 소시민의 자기 위안과 거짓 평화의 외피를 두르고 자기만의 신앙에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다.

 

재물도 없고 능력도 없고 시간도 없는 그래서 보잘 것 없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랴하는 자조적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 모습이다.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부족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하느님은 그렇게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다만 투신과 헌신에 대한 나의 의지와 결단이 부족하다는 아픈 깨달음이 필요하다.

 

세상은 일상적 악과 불의가 횡행하고 있다. 단지 오늘의 현실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태초부터 인간의 삶이란 비뚤어진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악과 불의를 잉태하였다. 이것을 원죄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은 바로 이 원죄의 영향으로 가만 두면 악으로 기우는 경향성을 지닌다. 찌그러진 인간 본성의 슬픈 자화상이다. 구체적인 악이 나에게서 출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악은 나의 악한 본성과 행위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고, 나의 구체적 악과 불의한 행위는 다른 이의 악한 본성과 행위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모두는 오염된 연못 속에서 헤엄치는 올챙이들과 비슷하다. 독이 살포된 물에 살면서 맑은 연못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올챙이도 불쌍하지만, 독물은 내 탓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것도 우습다. 비관적으로 바라보면 모든 올챙이가 같은 운명(죽음)에 놓여있지만 뜰채로 건져 올려져 맑은 물로 옮겨지는 것은 오염된 연못물의 정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 때에 거두어져 쓸모없는 가라지처럼 불구덩이에 던져질 운명을 맞이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이웃과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작은 실천에 돌입해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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