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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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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7-27 01:08

성 야고보 사도 축일(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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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석 라이문도

무엇을 원하느냐?”(마태 20,21)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야고보와 요한이다. 그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예수님께서 최초로 부르신 4제자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나서서 예수님께 청탁을 한다. 자신의 두 아들을 장차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다. 좌의정과 우의정 자리를 달라는 엄마의 치맛바람처럼 보인다. 제자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어머니까지 가세하는 모양이다.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그 가족들의 속내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염려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다른 열 제자는 이 장면을 두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고 복음은 전한다.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치유 능력과 악령을 제어하는 힘 그리고 장정만도 5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모으는 모습은 어떤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다만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과 제자들이 그리는 새로운 세상은 달랐다.

 

예수님께서 선포한 것은 하늘나라였다. 하느님의 권능이 통치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권력의 주종관계나 상하관계가 사라진 세상, 지위와 권력은 그저 공동체를 위한 봉사의 역할에 충실한 그런 나라였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고 지배하고 억압하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꿈꾼 세상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다윗 왕조의 영화를 재건한 새로운 이스라엘이었다. 스승이신 예수님은 그 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분이고 자신들은 예수님의 적극적 추종자요 협력자로서 당연히 새 이스라엘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공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광과 부귀와 지위를 머리에 그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부활의 빛에 비추임을 받기 전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을 원하느냐? 지위와 권력이냐? 부귀와 영화더냐? 아서라!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르는 구나! 우리가 애쓰고 도래하길 바라는 하늘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로마제국)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위와 권력은 종이 되기 위한 도구일 뿐 지배와 군림의 수단이 아니다. 섬기는 자만이 하늘나라에 합당하다. 그런 사람만이 내가 마실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시는 사람이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목숨을 내놓게 될 스승의 뒤를 따르는 참 제자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오늘의 내가 그분께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이 마셨던 고난의 잔을 나도 매일 기꺼이 마시려고 하는가?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의 발밑으로 내려가 종처럼 무릎 꿇을 수 있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는 섬기는 사람인가? 섬김을 받으려하는 사람인가?

 

알량한 자존심에 생겨난 작은 생채기에도 어찌할 줄 모르고 분노하는 나는 섬김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부활의 빛으로 비추임을 받아 명오가 열려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게 해 달라 기도할 뿐이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섬김의 영성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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