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6주 목요일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예수님께서 미리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인가? 빈부격차를 긍정하는 말씀인가? 만일 그렇게 해석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벌 받을 일이다. 가난한 이들 편에 서서 그들의 설움과 눈물에 연민으로 함께 하시고 당신 자신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셨던 예수님이 자본의 이 독한 원리를 긍정했을리는 만무하다.
문맥을 따라 살펴보면, “가진 자”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품고 있는 사람, 즉 제자들을 의미한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은 갈수록 그 신비를 더 잘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열성과 열정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는 사람에게는 그가 필요한 모든 것, 즉 차고 넘치는 지혜를 주시지만, 하느님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 마음은 있으나 게으른 사람, 하느님의 말씀을 알려는 열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의 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그가 가진 깨알만한 믿음조차 빼앗길 것’이다. 아니 누가 그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스스로 내 팽개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선물을 상대가 무시하면 다시는 그에게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다해 대화에 임하는데 상대가 건성으로 듣거나 딴청피우면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배울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르칠 의욕도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나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을 쏟아 부으며 이끌게 되는 법이다.
사순 2주일(3월 1일)부터 강론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5개월이 다되어 간다.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았지만 아직은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는 날까지는 성실하게 임하고 싶다. 처음에는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도, 주제를 잡고 글을 쓰는 것도 상당히 궁색하고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이젠 제법 탄력이 붙은 느낌이다. 기를 쓰고 애쓴 덕분에 조금씩 더 말씀에 가까워지고 매일 삶을 반성하고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다만 내뱉은 대로 살지 못하는 언행불일치가 비수가 되어 늘 부메랑으로 아프게 되돌아온다. 주옥같은 내용은 아닐지라도 매일의 복음 해설과 묵상을 교우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음은 은총이고 기쁨이다. 다만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준다면 더욱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변의 교우들에게 가능하면 많이 알려주시길 바란다.
내가 ‘가진 것’ 겨자씨만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나를 ‘부유하게’ 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는 주님께 온전히 의탁했으면 좋겠다. 더 주시려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으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