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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21 10:19

연중 16주 화요일

2,184
김오석 라이문도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 인간 조건은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다두 마리 토끼를 쫒다보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격언의 의미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이것이 가능하다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버선 발 차림으로 뛰어나가 반기지 않으셨다예수님은 효성도 없고 형제애도 없으신 분이실까결코 그렇지 않다그렇다면 왜 그랬을까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2차적인 것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그럼으로써 모두를 사랑하는 길을 선택하셨다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공동체는 혈육의 차원을 넘어설 때 가능한 실재이다.

    

당연히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머니요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있는 군중들은 아직 확신이 없었다그들은 더 많은 관심과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더 많은 사랑의 체험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사랑은 그 방향이 사랑을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중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포괄하는 법이다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웬만큼 밥 먹고 사는 사람도 그리고 부자도 모두 그 범주에 포함된다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왜냐하면 가장 가난한 사람은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지만부자는 관심을 덜 가져도, 가만 놔두어도 생존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믿는 이들을 부를 때 형제요 자매라고 부른다그런데 내가 즐겨 부르는 그 형제자매들이 참으로 신앙적으로 괜찮은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모범적이고 너그럽고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만 형제님자매님하고 부르는 것은 아닌가거기다가 경제적 여유를 지니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참으로 가난하고 비천하고 하느님의 말씀과는 먼 날강도 사기꾼 같은 사람들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그런 사람들에게 확대되고 그들의 비뚤어진 모습을 바로 잡으려 노심초사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연결될 때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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