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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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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7-20 00:06

연중 16주 월요일

2,320
김오석 라이문도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 12,39)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데 대한 예수님의 한탄이다. 사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들켜버린 듯 해 살이 떨린다. 믿음이란 것이 본디 희미한 안개 저편의 실체를 향한 여정인지라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의 조건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느님의 표징을 보고 싶은 마음이, 기적을 체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외라고 할 수는 없다. 한창 믿음의 갈등을 겪던 젊은 시절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주님, 바짝 말라있는 저 화분의 꽃이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싱싱하게 활짝 핀 모습으로 바뀐다면 제가 당신께 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억지를 부린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성서 본문의 번역은 절개 없는이라고 되어 있지만, 좀 더 원뜻에 가까운 번역은 음란한 여인’, ‘간음한 여인’, 심지어 창녀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심한 표현을 쓰신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관계가 있다.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은 간음한 여인이나 창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냈다고 비난하던 이들이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해꼬지하려는 악한 지향으로는 그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보아도 믿음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악한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예수님의 준엄한 질책이 바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라는 말에 담겨 있음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하느님을 만나려 끝없는 열망을 간직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하루하루를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표징이요 기적으로 살아나게 마련이고 그 표징과 기적으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고 깊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기이한 현상이나 놀라운 기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 보다는 지금 여기우리의 일상에서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징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깨닫는 오늘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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