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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18 05:29

연중 15주 토요일

2,470
김오석 라이문도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태 12,14)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마태 12.18)

 

세상 사람들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는 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경우이거나 혹은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비루하고 창피한 일을 나에게 덧씌우는 이상한 소문을 만날 때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의 수다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누군가의 모의와 협잡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이나 사건,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의 혀에는 양날 칼이 버무려져 있는데 한쪽 날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칼과 같고 반대쪽 날을 생명을 죽이는 독이 묻은 칼이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악성 댓글로 상처받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의 경우를 종종 뉴스로 보지 않는가? 아예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삶이란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관계가 거의 전부인지라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또 사람들은 자신 아닌 누군가에 대한 가십거리를 안주삼아 수다를 떨 때 심리적으로 매우 야릇한 쾌감을 느끼고 생의 의욕(?)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는 순간 나 자신도 나를 아는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올라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고 인간관계의 그물 또한 두세 다리만 거치면 모두가 서로 아는 사람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하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권력자나 윗사람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 뒷담화도 못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답답할까? 없는 말 지어내지 않고 터무니없는 과장이나 축소 없이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건강한 비판의 수준에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

 

참으로 고약한 경우는 마음속에 들끓는 적의를 갖고서 누군가를 상처주고 죽이려는 적극적 모의를 하는 경우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방향에 절대로 설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바리사이들이 그분을 향해 발산하는 미움과 적의가 결국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최악의 출발이라 하겠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고 또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주는 예수님을 어떻게 없애버릴까 모의하는 바리사이의 모습에서 우리 내면의 바리사이를 찾아내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연 내 안에는 나의 이익이나 기득권을 건드리는 다른 사람들의 정의로운 요구에 대한 미움의 싹은 없는가?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선행에 대해 질투의 마음은 없는가?

누군가에 대한 적극적인 복수나 해코지를 하려는 마음은 없는가?

 

다른 이의 터무니없는 모함조차도 때로는 내 자신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 인내와 너그러움을 청하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로서의 나의 정체는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님, 오늘 제 삶 가운데 함께 하시어 사랑으로 탐욕을 이기고, 고운 말이 험담을 덮게 하시고, 관대한 너그러움과 인내로 슬픔과 고통을 어루만짐으로써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오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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