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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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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7-16 23:26

연중 15주 금요일

2,508
김오석 라이문도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

 

안식일 규정은 율법의 핵심이다. 안식일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는 날이었다.(창세 2.1-3) 신명기의 십계명에서 안식일은 이집트 억압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야훼를 기억하며 주인과 남종과 여종들, 이방인, 가축까지 쉼을 주고자 했던 약자보호법이었다.(신명 5,14-15 참조) 종교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의미가 녹아있던 안식일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각종 세칙이 더해지면서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멍에가 되고 말았다.

 

안식일 금지 규정은 파종, 경작, 수확, 볏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짐승을 잡는 일,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절이고 그 가죽 보존을 위해 약을 바르는 일 등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배가 고파서밀 이삭을 뜯어 먹었는데, 바리사이들이 이것을 두고 밀을 수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단죄의 칼을 들이대는 장면과 예수님의 답변 내용이다.

 

다윗의 일행이 배가 고파, 먹어서는 안 될 제단 위의 빵을 먹었던 것처럼 제자들이 한 행위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다. 당시 랍비들은 배고픔을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으며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안식일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답변이다.

 

두 번째는 안식일 제사를 지내는 일이 안식일 의무를 어길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할례, 성전제사, 파스카 축제 등이 안식일과 겹치면 안식일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다면 배고픔 때문에 안식일 의무를 어기는 것은 훨씬 더 자비롭게 허용해야 하며, 당신은 성전보다 더 큰 이고 또 성전 자체가 당신이라는 선언이다.

 

셋째로 안식일의 근본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안식일 규정(1마카베오 2,34-38)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신명 5,15-16)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그러니 온갖 세칙(41개 항목)에 매달려 안식일의 근본인 하느님 예배와 이웃사랑이 증발해 버린 안식일의 멍에를 이제 부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사랑이 금지규정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비적으로 성찰해보면 교회는 해방의 장소여야 한다. 속박의 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교회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교회를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면 곤란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양적 사상에서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불어 넣는 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종교적 관습에 좌우될 수 없다. 어려움(교통사고 등)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주일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해도 사는 것이 팍팍한 것이 세상의 구조다. 고역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 안식일 법이다. 주인이 일하는 데 종들과 가축들이 쉴 수 없는 노릇이다. 안식일 법은 바로 이 종들과 가축들로 대변되는 약자보호법이다. 야훼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가 드러나는 규정인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배나 경신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 주일에도 일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사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적 사회구조에 다름 아니다. 주일이 안식일의 본래 정신을 실현하는 날이 되도록 애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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