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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16 00:55

연중 15주 목요일

2,374
김오석 라이문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28-30)

 

나의 삶은 축복인가?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한다.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처럼 힘겹다는 뜻이다. 삶 자체가 지니는 엄숙함과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말이다.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적어도 한평생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대는 아픔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다. 그 삶의 무게를 당연히 주어지는 선물로 받아들이고 친구처럼 사귀고 동반하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삶의 무게뿐만 아니라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마저도 생의 의욕을 촉진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산다는 것은 축복이요 기쁨이다.

반대로 왜 내게만 이런 시련과 고통이 쏟아지느냐며 불평과 좌절로 낙담하여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이는 일부러 끌어당긴 지옥을 미리 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에게 인생은 저주요 지옥이다. 그런 이가 생각하는 것이란 죽음뿐이다.

 

어떤 절름발이 소년이 눈 먼 소녀를 업고서 한 쪽 발을 절뚝거리며 힘겹게 길을 가고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기특해서 말했다. “얘야, 많이 힘들겠구나.” 소년이 대답했다. “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이 얘는 사랑하는 제 동생인 걸요!”

사랑으로 지는 짐이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언제나 가볍고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된다.

 

예수님은 오늘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모두 당신께로 초대한다. 그리고 당신의 겸손과 온유함을 배우라고 하신다. 그리고 당신께서 주시는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고 하신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왜 힘들고 고통스런 짐을 지는 것이 되는가?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해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작위(作爲)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억지로 행하게 될 때 달라붙는 전리품일 뿐이다.

 

높이 올라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장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웅장한 건물을 짓고 싶은가? 그렇다면 바닥에서 기초부터 닦아야 한다. 이것이 겸손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는가?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입어야 한다. 이것이 온유함이다.

 

예수님께 의탁하면 인생의 모든 짐과 멍에들이 다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대로 모두 다 가져오지만 예수님 안에서 배우는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통해 인생의 짐과 멍에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익을 위한 작위(作爲) 때문에 생겨나는 고난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억지로 행하고(욕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게으름)으로써 겪는 고통은 더 이상 없게 된다. 사랑으로 짊어지는 짐과 멍에는 오히려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먼저 겸손과 온유함을 배워야 한다. 마음이 겸손하지 않고 온유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기꺼이 멜 수 없다.

 

악덕의 불쏘시개인 부정을 벗어버리고, 세상의 가치에 물든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정의와 참된 평화, 봉사와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지만, 사랑으로 기쁨으로 짊어질 수 있기에 그 짐은 무겁지 않다. 오히려 늘 가볍고 기쁨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고 보람이 된다. 더구나 다른 이를 위한 희생으로 지게 되는 십자가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공덕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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