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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14 00:24

연중 15주 화요일

2,488
김오석 라이문도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

 

이 말씀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은 복되다. 왜냐하면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라진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 약 3km 위치에 있던 가파르나움 위쪽 마을이다. 베싸이다는 요르단 강과 이어지는 호수 동쪽에 있던 마을이다. 티로와 시돈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그 부유함과 사치로 비난받던 상징적인 마을이다. 소돔은 저주받은 땅 자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 곳이다.

 

갈릴래아에서 공생활을 하신 예수님의 치유와 악령 축출과 여러 이적들의 본고장은 가파르나움 일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표징들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은 그곳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모진 말씀을 하신다. 모두 저승에 떨어질 것이라고. 심판 날에는 결코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고.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운명을 비켜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다.

 

내 삶에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채고 나의 인생 여정에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수성이 놀람과 경탄으로 고양되어 감사와 찬양의 환성을 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주저함 없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

 

최근에 있었던 아주 작은 깨달음 한 가지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화요일 동료 신부님들과 점심으로 물 회를 먹고 탈이 났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토하고 배가 아프더니 화장실에 여러 번 드나들어야 했다. 오후 내내 식은땀과 계속되는 구역질과 함께 배탈이 나더니 급기야 저녁미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어찌 어찌 간신히 저녁미사를 마치고 교우 의사 분의 안내로 밤늦게까지 문을 연 동네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하고 처방을 받아 사제관에 돌아왔다. 그러나 온몸이 욱신거리는 통증과 구토증세로 거의 잠을 못 이루고 하얗게 밤을 새고 나서야 겨우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급성 장염이었을까?

좀 의아스러울지 모르나 살아오면서 아무튼 그렇게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아파본 기억은 별로 없다. 6년 전쯤 축구하다 코뼈가 부러져 코 수술한 후 23일간 겪었던 통증과 몸살감기 외에는 별 기억이 없다.

이 이야기를 금요일 저녁, 술 권하는 동창 신부의 술을 거절하며 핑계 삼아 해줬더니 돌아온 핀잔의 말이 이렇다. “인생 참 편하게 잘살았네?” “ ..... ”

 

내 삶의 여정 전체에 어찌 아픔과 고난, 고통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질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 측면에서만 돌아본다면 난 정말 하느님의 돌보심과 은총 속에 살아왔음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까진 큰 병치레 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육신의 고통 없이 58년을 살아왔음이 어찌 은혜가 아니고 기적이 아닐 수 있겠는가? 다만 그것이 은총임을, 기적임을 깨닫지 못한 무딘 나의 감수성이 문제다. 삶에 대한 성찰 없이 살아온 껍데기가 바로 나였음을 알게 된 작은 깨달음이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보고 들을 수 있음이, 냄새 맡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말하고 걷고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심지어는 미워할 수 있음 조차 은총이요 기적임을,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친구들과 이웃이 그리고 파란 하늘과 해와 달과 바다와 강이, 나무와 꽃들과 새와 강아지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왜 우리는 절절히 못 느끼면서 살아갈까? 소중한 것은 왜 꼭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일까? 매순간 매사에 감사드리며 살아야겠다.

오늘 예수님의 경고 말씀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은 복되다. 놀란 가슴은 자신의 처지가 하느님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은총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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