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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12 18:58

연중 14주 금요일

3,023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 구원자로 믿는 그리스도교를 나의 종교로 삼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수님 믿으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답이 예비신자들의 교리반 등록 카드에 가장 많다. 다음은 예수님 믿어 풍성한 축복과 은총을 받아 오래 오래 건강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라는 생각 등등이다. 물론 이해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세례 받은 지 오래된 신자들도 이런 대답을 서슴없이 한다는데 있다. 사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 마음 편한 상태만은 아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마태 10,34-35)

 

가슴이 섬뜩하다. 가장된 평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감추고 억압하여 얻는 가짜 평화가 주는 대가가 혹독하다는 의미다. 참된 내적 자유와 평화는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어야 할 때도 있음을 말해준다. 마음의 평화는 믿음의 결과일 뿐이다. 하느님나라와 그 의로움을 구하는 본질 추구에 딸려오는 부수적 과실이라는 뜻이다.

건강과 부유함도 축복과 은총도 마찬가지다. 전쟁터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과 내세에 대한 바램이라는 대중적 종교 신심을 무시하고 격하시킬 맘은 없으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권력자의 눈 밖에 나고 사람들의 욕을 먹기 쉬우며 가족에게서 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말씀이다.

 

권력자의 탐욕과 불의, 무능과 고집을 지적함으로써 고난과 고통을 자초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짓밟히고 눈물 흘리며 고통 받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 곁에 서서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거짓과 아첨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실과 바른 말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재물과 돈 벌이를 위해 야합과 타협을 일삼는 이들에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가난과 청렴함을 선택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 사이버 영상과 디지털이 난무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신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 받게 된다는 오늘의 말씀은 거꾸로 오늘의 현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녕이라는 현실적 안락함으로 도피하길 좋아하는 우리의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죽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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