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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6-14 21:59

연중 11주 월요일

2,276
김오석 라이문도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마태 5,39)

    

참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이다.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고 이리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을 주시는가?

    

누군가의 오른뺨을 때리기 위해서는 왼 손바닥이나 오른 손등으로 쳐야하는데 유다인들은 손등으로 맞는 것을 매우 모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의 논리나 우리의 생각은 오늘의 복음과는 사실 많이 떨어져 있다. 어찌 악인에게 대적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뺨을 치는 사람을 참아낼 수 있으며 게다가 다른 뺨마저 대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폭력을 싫어하신다. 더군다나 폭력에 맞서 폭력을 행하는 대응폭력조차 분명히 금지하신다. 무슨 의미일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가르친 율법은, 자신의 지체를 잃을까 두려워한다면 사람들이 악한 행실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행이 넘실대고 악인이 활보하는 불행한 현실이다. 우리가 율법에 따라 모든 악에 악으로 대응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모두도 결국 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악과 불의에 대한 저항 방식은 비폭력저항 밖에는 사실 길이 없다. 악에 악으로 대응하다 악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욕 받고 사는 것, 빼앗기고 사는 삶을 결코 긍정할 수 없지만, 온전히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는 사람은 그분의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낼 힘을 얻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는 사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이는 예수님처럼 행동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악과 불의에 악과 불의로 대처하지 말라는 것이지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고개 숙이고 도망가서도 안 된다. 악한 방식이 아닌 선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악의 정체를 드러내고 불의를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늘 지는 것 같아도 하느님의 기준에서 늘 이기는 사람이 악에 선으로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 발 내딛을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오해와 비난, 그리고 고통과 환난은 오히려 복음에 헌신하고 있다는 참된 증표가 된다.

많이 부족하시만 복음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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