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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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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6-10 23:43

연중 10주 목요일(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536
김오석 라이문도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사도 11,24)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사도가 되는가?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착하다는 말이 그리 듣기 좋은 말이 못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황이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사도는 착한 사람이어야 하고 그 다음 두말할 것 없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거저 내어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것이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결국 나의 것이란 없다는 관점을 지닌 사람, 필요한 이에게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다 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다.

 

복음의 요구는 때로 너무 단순하고 쉽다. 다만 그 단순하고 쉬운 요청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나를 포기할 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양 주먹 꽉 쥐고, 마음의 탐욕을 움켜쥐고 하느님 나라에 이를 수 없음을 선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13세기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교와 자기 아버지 앞에서 자기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을 드러냄으로써 완전 무소유와 무방비(최소한의 안전에 대한 고려도 없음을 의미)의 삶을 지향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일행은 노천이나 초라한 움막에서 살았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농부들과 함께 일했다. 일거리가 없으면 구걸을 하거나 굶었다. 그러나 그분의 동료와 제자들은 실상 성인이 살아있던 시기에 이미 이 가르침을 포기하기 시작하였다. 완전 무소유, 완전 무방비의 삶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리라.

 

사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이탈하는 법을 깨우칠 때까지 세상은 수많은 올가미와 장애물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것이다.

나의 것을 나의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여 기꺼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예수님의 복음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합리화하고 완화하려는 유혹보다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내 안의 집착과 불안과 두려움을 응시하고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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