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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6-06 01:04

연중 9주 토요일

2,593
김오석 라이문도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풍족한 가운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것은 렙톤 두 닢이었다. 렙톤은 그리스 돈 가운데 최소단위 동전으로 그리스 은전 드라그마의 128분의 1이다. 로마 동전으로는 콰드란스 한 닢이다. 하루 일꾼의 품삯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쯤 되는 가치다. 오늘 우리의 경우 하루 일꾼 품삯을 십 만원으로 본다면 1.500원 쯤 되는 돈이다.

 

자본주의는 돈의 양을 숭배하는 경제체제다. 동기나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고 조직을 평가하고 기업을 평가한다. 적은 돈을 가진 이는 입이 없고 얼굴도 없고 아예 존재 자체가 투명 인간처럼 무시되는 반면, 많은 돈을 가진 이는 돈의 액수만큼 입의 숫자도 늘어나고 얼굴도 커지고 존재감도 무한 확장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돈이 사람에 앞서는 빌어먹을 사회다. 그런 빌어먹을 사회 속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빌어먹을 가치관에 흠뻑 젖어 사람을 보지 못하고 돈을 보며 살아가는 일상에 길들여지고 있다. 교회도 이 세속화의 대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잠들지 말고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은 렙톤 두 닢을 넣은 과부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헌금했다고 선언하신다. 절대적 양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양으로 평가한 것이다. 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로 과부의 봉헌을 바라본 것이다.

적게 소유했지만 소유의 전부를 하느님께 내놓은 과부의 하느님께 드리는 선한 마음의 지향이 소중했다. 많이 가졌지만 소유의 작은 한 귀퉁이로 생색을 내는 부자의 마지못한 흉내 내기로는 하느님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다. 하늘나라는 돈의 절대적 양으로 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선한 지향이다. 순수하고 선한 지향을 갖는다면 동전 두 닢으로도 하늘나라를 살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억만금을 들여도 하늘나라는 요원하다.

 

인색한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서나, 가지고 있는 것에서나 늘 궁핍하다.”는 말이 있다. 온 세상을 하느님의 선물로 알아보는 사람은 늘 풍족하여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으로 알아 언제 어디서든지 기꺼이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있고 곧바로 실행하지만,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가난한 이웃에게 재물을 내놓는 데에 굼뜨고 핑계가 많고 늘 인색하다.

 

현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제자요, 하늘나라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 하는 이유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은 내 주머니 속에 동전 두 개 넣고 다니며 하루 종일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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