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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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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6-03 01:07

연중 9주 수요일

2,224
김오석 라이문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마르12,26: 탈출3,6)

 

사두가이들과의 부활 논쟁이 오늘 복음의 내용이다.

사두가이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기원전 152년 하스모네 가문의 요나탄이 왕권과 대제관직까지 겸임하자 소위 경건한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바리사이 당을 만들었고, 일부 제관들이 주축이 되어 에쎄느 당을, 그리고 대부분의 제관들과 유력인사들은 하스모네 가문에 동조하여 사두가이 당을 만들었다.

 

사두가이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한 나머지 죽은 이들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부활사상은 기원전 2세기경에 비로소 이스라엘에 싹튼 사조였는데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두가이들은 아들 없이 남편이 죽은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는 수혼법(창세38,8: 신명 25,5-10)에 따라 무려 일곱 명의 형제와 결혼한 여인이 부활하는 황당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럴 경우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지 질문하며 예수님을 조롱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고 답한다. 즉 부활의 세계는 이 세상의 연장이 아니고 하느님의 능력”(마르 12,24)으로 창조되는 온전히 새로운 세계라는 것이다.

 

바울로 사도도 현세 실존과 부활 실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 15,44)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립 3,21)

 

그리고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실 때 하셨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심을 가르치신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마르12,26: 탈출3,6)

풀어 설명하면 나는 너희 선조들이 섬긴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부활이 없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이 모두 영원히 죽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들의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면 선조들은 이미 하늘에서 복된 삶을 누리고 있으며,(루가 16,22-31:부자와 라자로의 예화) 장차 부활해서는 더욱 행복하게 되리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마태 8,11-12:“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느님은 당신을 섬긴 선조들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고 당신 능력으로 살려 거느리시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성서의 하느님은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충실하게 하느님을 믿고 섬긴 죽은 모든 선조들과 의인들은 살아있는 존재로 지금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아 주시며, 우리 역시 살아서나 죽어서도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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