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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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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29 01:03

연중 8주 금요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211
김오석 라이문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가 9,23)

 

오늘은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광화문에서 거행한 시복식을 통해 복자가 된 124위 순교 신앙 선조들의 첫 번째 기념일이다.

그분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0년에서 150년 전의 일이다. 아주 오랜 옛날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신앙 선조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게 했을까?

 

어쩌면 가진 것이라곤 가난한 삶과 가난한 마음뿐이었던 당시 신앙 선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이었기에, 자신들의 신앙을 탓하며 대역 죄인으로 몰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통치자들의 압박에 적극적으로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배교하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마지막 소중한 목숨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천국의 삶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순교는 신앙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붉은 꽃이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자유 시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박해나 피 흘려야 하는 순교의 상황은 찾기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순교의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백색 순교라 한다. 매일 죽어 매일 새로운 생명을 산다는 것은 일상의 순교이면서 부활의 삶을 미리 사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것을 오늘 복음에서,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기를 버린다함은 자신의 뜻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앞서가는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내 뜻을 고집하면 안 된다. 왼쪽 깜박이가 켜졌는데 오른쪽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개인적 주체성을 위한 자아실현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깨우침이 필요하다. 나를 강조하다보면 어느새 하느님의 뜻보다 나의 뜻이 앞서는 교만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순교의 삶과는 멀다.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옛 인간을 벗어 버린다는 의미다. 옛 인간으로 간주되는 죄와 나약함, 자기중심적 사고, 탐욕, 이기심, 비열함, 잔인함 대신에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 절제, 관대함, 고결함, 온유함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자기 부정은 자기 멸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을 멸시하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과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보는 것은 크게 다르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내하고 극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하느님 나라 건설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데 힘들지 않고, 인내와 극기가 필요치 않는 경우는 없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도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게으름과 타협하지 않고, 날마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을 충실히 해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잊힌 존재로 살아가는 일 역시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주고 이해하고 수용하려 애쓰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요 오늘날 순교의 삶이다.

 

인내와 극기의 삶 한 가운데서 늘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평화가 우리 각자의 삶속에 머물기를 124위 순교 복자들께 전구를 청하면서 오늘도 기쁜 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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