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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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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28 01:43

연중 8주 목요일

2,114
김오석 라이문도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

그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마르 10,50)

 

앞 못 보는 소경의 처지는 한마디로 암흑이다. 답답함 그 자체다. 더구나 예수님 당시의 소경은 장애를 가진 그 자체로 저주받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 삶의 희망도 의욕도 없이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거리에서, 그리고 집 문간에서 동냥으로 빌어먹는 눈먼 거렁뱅이의 처지가 오죽했겠는가?

 

그 소경, 바르티매오가 기쁜 소식을 들었다. 바로 예수님이다.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죄인들을 용서하고, 병든 이를 치유하신다는 그분이 자신의 마을을 지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나시는 소리를 들은 바르티매오는 결사적으로 소리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자신의 인생은 어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상처와 아픔만이 친구였던 막장 인생 소경 바르티매오의 절규다. 자신의 결핍과 부족을 구구절절 알고 있던 사람, 결코 평범한 보통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이의 마지막 기도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통증을 유발하는 병은 무서운 병이 아니다. 아무런 증상 없이 인체에 기능을 망가뜨리는 자각 증상 없는 병이 치명적이다. 영적 삶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결핍으로 인한 필요를 느낄 때 간절함이 생기는 것이고 그 간절함이 사람으로부터 정성과 최선을 이끌어내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온전히 의탁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간절히 청하는 바르티매오의 외침을 못들을 척 외면할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의 연민과 사랑이 그리할 수 없게 한다. "그를 불러오너라."

 

소경은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다가간다.

 

바로 이것이다. 부족하고 결핍된 우리, 자비가 필요한 우리의 자세도 이러해야 한다.

전력을 다해 주님을 부르고, 그분의 부르심에 적극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위선과 교만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그분께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을 벗어 던지고, 하느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셨던 그 모습으로, 속살을 환히 드러내며, 속마음을 열어젖히며 주님께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께 달려가는 것,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모든 것을 버리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다시 모든 것을 얻는다. 영혼의 눈을 뜨고, 빛을 발견하게 되며,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희망을 간직한 사은 어떤 처지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인내로써 기다릴 줄 안다. 그리하여 결국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믿음의 사람이 되고 부활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눈을 뜨기 위해,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소경이 했던 것처럼 벗어 던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넘치는 자비를 확신하며 하느님의 품에 안기기 위해 우리가 용기를 내고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설 곳이 어디인지 묵상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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