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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5-27 07:27

연중 8주 수요일

2,049
김오석 라이문도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10,37)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철없는 제자들이다. 스승은 조롱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을 맞고 죽음에 이를 것을 미리 내다보고 비장한 마음을 토로하는 데, 자리다툼이라니.

 

누가 보기에도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어스름한 조명과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가볍게 한 손을 얹고, 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서 말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남자는 이튿날 일을 생각하고 있다. 상사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고민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여자는 겨울 바다를 상상하고 있다. 자기는 모래이고, 남자는 바다, 하얀 거품을 머금은 파도가 모래사장에 밀려와 모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소리 없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겨울 바다를 말이다. 여자는 행복감에 젖어있다.

 

동상이몽이라고 한다. 같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목적지가 다를 때, 서로 자기가 가야 할 곳을 고집하면 배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이 자신의 일에만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함께 있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함께 있으면서도 남이요, 원수가 되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원수지간이라면 그래도 낫다. 그런데 늘 살을 부딪쳐야 하고 얼굴을 봐야 하는 누군가와, 더구나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의 구성원과 그런 사이라면, 그것은 이미 지옥이다. 지옥이 따로 있나? 마음에 평화가 없고, 뒤죽박죽 엉켜 있어서 앞이 안보이면 그게 지옥이지.

 

스승은 모욕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데, 제자들은 부귀와 영광에 대한 자리다툼이다. “다른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마르10,41) 다른 제자들의 생각도 그 두 사람과 같았는데 선수를 뺏긴 데에 대한 속상함이 드러난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인품을 보고, 그분이 구세주임을 믿었다. 그런데 그들은 세속적 권위와 부귀와 영광을 누린 다윗 왕과 다윗 왕조를 재건할 그런 힘 있는 메시아를 생각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은 세상의 것을 누리고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예수님이 구세주라 함은 지배하고 억압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과는 무관하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종의 역할을 기꺼이 수락하고 기쁘게 행하는 봉사의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종이 됨으로써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셨고 그로인하여 세상의 빛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무엇을 원하는가? 세상에서의 부와 명예. 지위와 권력, 편안함과 즐거움인가? 그런 것이라면, 예수님을 버리고 추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수님을 스승이요 주님으로 모시면서 그분과 정 반대의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우리 욕망의 끈을 잘 붙들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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