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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5-22 00:37

부활 7주 금요일

2,212
김오석 라이문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후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신다. 삼세번의 질문은 완전히 대못을 박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던 베드로(요한 13,37)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음을 상기시키는 사랑과 배신의 뼈아픈 상처와 기억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사랑에 대해 장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은 사랑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리 쉽게 자기 마음과 의지의 견고함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세 번이나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는 질문과 대답 속에 담긴 긴장은 이것이다. 질문하는 입장에선 미덥지 못하고, 대답하는 처지에서는 불안하다. 이 긴장을 완벽하게 넘어설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용서와 상처의 치유가 전제될 때 새로운 신뢰가 형성되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약속과 위임이 이뤄지게 된다. 아기 낳고 기르는 법을 다 익히고 나서 시집가는 처녀는 없다. 목자 역시 양 치는 법을 다 배워야만 목장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성실하게 구하고 몸을 써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으면 조금 부족해도 시작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너의 양이 아닌 나의 양을 돌보라는 예수님의 당부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제자 베드로에게 있음이다.

 

또한 오늘 여기 우리에게 호소하는 예수님의 당부다. 무슨 좋은 일이 이뤄지면 그것은 나의 공이 아니라 주님의 공이요, 무엇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게으름과 정성 없음의 탓임을 알아 가슴을 치는 겸손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인 나를 따라라.”는 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를 때 들었던 부르심의 말씀이었다. 첫 번째 나를 따라라.”와 마지막 나를 따라라.”는 부르심 사이에는 부르심과 응답, 만남과 친교, 우정과 사랑, 배신과 회심의 드라마가 있고, 이 과정을 통해 베드로는 환골탈태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예수님의 질문과 초대를 음미해 보자.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뭐라고 답할 것인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이 질문들을 붙들고 하루를 씨름한 후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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