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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5-21 00:38

부활 7주 목요일

2,121
김오석 라이문도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17,20-21)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갈 때 최고의 걸림돌은 서로 다른 기질과 본성, 서로 다른 교육과 성장 배경,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으로 발생하는 불화와 분열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라 단언한다고 기시미이치로는 <미움 받을 용기>에서 밝히고 있다. 나아가 개인에 국한되는 고민, 이를테면 내면의 고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형성하게 될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을 따르는 이들이 이루게 될 공동체 즉 교회의 구성원들이 겪게 될 인간관계 안에서의 불일치와 불화를 미리 내다보시고 오늘의 기도를 당신의 유언처럼 남기고 계신다.

갈라져선 안 된다. 분파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행동 양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나와는 여러모로 다른,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인정할 때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뜻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 안의 일치란 서로 마주보며 자기를 주장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비전, 즉 하느님 나라, 복음의 가치를 바라보며 함께 걸을 때 얻을 수 있는 은총이요 선물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우리의 선택이 복음의 가치에 토대를 두고 있느냐,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복음의 가치에 헌신하느냐의 여부다. 세상에서 자신의 손익, 권력과 명예, 체면을 차리려는 세속적 관점을 믿음의 공동체 안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저속할 뿐만 아니라 불온하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득실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님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고 옳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 안에서 만나는 공동체는 예수님 그분을 세상에 증거하고 그 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비전을 지닌 사명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튜닝(조절)하여 일치하여야 할 대상은 형제자매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그분과 내가 하나 되고, 그분과 네가 하나 되어,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면 공동체는 어느 덧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일치의 방법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요한 17,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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