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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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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20 01:11

부활 7주 수요일

2,257
김오석 라이문도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요한 17,16)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 바깥 어디에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하느님을 등진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행위들의 총합이라는 의미로 읽으면 될 것이다.

세상 한 가운데 살아가면서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는 그런 삶이 제자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스승이신 예수님은 기도하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기를 예수님은 역시 기도하고 계신다.

 

세상은 우리에게 부자가 되는 것을 성공이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것이 출세라고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경쟁자들을 밟고 맨 꼭대기에 올라서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발밑에 밟힐 것이기에.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노예들과 떠돌이들의 하느님이셨다. ‘히브리하삐루, 노예와 떠돌이를 지칭하는 말에서 왔다. 야훼 하느님은 바로 그런 하삐루들의 주님이 되어주셨다.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어,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시다.

 

이 야훼 하느님이 인간을 향한 사랑에 넘쳐, 인간과 똑같게 됨으로써 당신 사랑을 완성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낮춰 사람이 되어 하늘에서 땅에 오셨다. 벌거벗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사람의 집이 아닌 짐승의 집에서, 짐승의 먹이가 되어 구유 위에 말밥으로 오셨음을 기억하자.

 

그런 예수님이 세상을 향하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제자들과 오늘의 우리에게 하신 구원의 말씀은 이것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세상 속에서 가난하고 연약하고 고통받고 눈물짓고 한숨짓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없는 우리의 신앙은 위선이고 불순하다.

 

세상에는 탐욕과 경쟁에 자신을 내던지고, 오직 물질적 풍요와 육신의 향락에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말초적이며 피상적 가치관에 매몰된 거대한 흐름이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주류에서 밀려나 안타까운 목숨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사코 이들에게 먼저 달려가는 또 다른 겸손한 이들의 흐름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향할 것인지 묻고, ‘오늘, 선택하라!’고 다그치고 계실지 모른다.

 

성공(成功)이란 공덕을 이룬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부와 권력을 쌓거나, 자기만족을 위한 결과를 획득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열려 있어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서 가져갈 수 있도록 애씀이 성공이다. 그렇게 성공은 하느님께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신화(神化: Deificatio)의 길을 걷는 과정이다.

 

진정한 성공에 대한 에머슨의 유명한 말을 음미해 보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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