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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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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5-19 01:37

부활 7주 화요일

2,358
김오석 라이문도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이 광야의 구리 뱀처럼 높이 들어 올려질 때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죽음의 때를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때는 바로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때이다. ()적인 의미의 계량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 구원의 때, 즉 카이로스(kairos)의 질()적인 시간이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느낄 때의 그런 시간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다. 아버지와 하나로 일치된 예수님의 일생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는 삶이셨다. 아버지의 뜻을 아는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당신 생명이 끊어질 때를 분명히 알고 계신다.

 

역시 하느님의 뜻에 일치되어 순명하는 삶을 사는 성인(聖人)은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안다. 왜냐면 그런 존재의 일생이란 예수님처럼 죽음을 향해 모든 감각과 지성과 의지를 집중시키고 사실상 그 때를 준비하는 작업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고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는 그 때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 습관의 차원을 넘어 몸과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어느 날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 진단이라도 떨어지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다.

내가 바로 그런 어리석고 호들갑스러운 자()라는 부끄러움에 얼굴 붉어진다.

 

삶과 죽음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명임을 깨달아 언제 어디서라도 이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명도 죽음도 하느님의 것인데,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한다면 순명을 모르는 자의 투정이요, 불신의 몸짓일 뿐이다.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풀숲에 나뭇잎 떨어지는 미풍일어 풀잎 먼지 하나 툭 떨어지는 그런 것이 내 목숨이라는 것.

 

성무일도 끝기도의 마침기도가 마음의 진정성을 담게 되기를 소망한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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